함양 여씨
咸陽 呂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5만
2015 인구
18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여어매呂御梅
당나라에서 한림학사를 지낸 인물이다. 877년 황소의 난을 만나 래주로부터 신라로 건너와 전서를 지냈다고 전한다. 그 후예가 성산에서 큰 성씨를 이루었고 뒤에 성산 여씨와 함양 여씨로 갈라졌다.
시조 여어매는 당나라 한림학사로서 877년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에 들어와 정착한 인물로 전한다. 그 후예가 성산에서 크게 번성한 뒤 성산 여씨와 함양 여씨로 분관되었으며, 함양 여씨는 고려에서 대장군을 지낸 여임청(呂林淸)을 중시조로 삼는다. 본관 함양은 경상남도 함양군 일대이다. 분관 이후 후손들은 서울과 충청북도 청주·영동 등지에 자리 잡아 세거하였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3명을 배출하였고 무과와 생원시·진사시 합격자, 음관 출신도 여럿 나왔다. 여칭은 1351년에 태어나 1423년에 죽었으며 조선 초기에 형조판서를 지냈고, 여자신은 병조판서를 지내고 청백리에 뽑혔다. 여성제는 1625년에 태어나 1691년에 죽었으며 숙종 때 영의정에 올라 가문의 위상을 대표하였다. 근현대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여운형이 이 가문에서 나왔다. 집성촌은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 전라남도 담양군 무정면 동산리와 정석리 등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4,835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여운형呂運亨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886년에 태어나 1947년에 죽었다. 신한청년당을 이끌며 3·1운동을 기획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외무부 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조선 독립의 당위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였다. 해방 뒤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좌우합작운동을 폈다.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여운형呂運亨 | 1885–1947 | 경기도 양평 | 임시정부 | 건국훈장 대한민국장(2008)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여칭
1351년에 태어나 1423년에 죽었다. 조선 초기에 형조판서를 지낸 문신이다.
여자신
병조판서를 지내고 청백리에 뽑힌 문신이다.
여성제
1625년에 태어나 1691년에 죽었다. 숙종 때 영의정에 올랐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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