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 홍씨
豊山 洪氏
3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5만
2015 인구
15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홍지경洪之慶
1242년(고려 고종 29)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지냈다.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신성포 오산당에 있다.
풍산 홍씨는 고려 고종 때의 문신 홍지경(洪之慶)을 시조로 한다. 홍지경은 1242년(고종 29)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국학직학을 지냈다. 본관인 풍산(豊山)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일대의 지명이다. 시조의 묘소는 안동시 풍천면 신성포 오산당에 있다. 집성촌으로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가 전한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30명과 상신(相臣) 5명을 배출하였다. 선조의 부마 홍주원에서 시작해 예조판서 홍만용, 예조판서 홍현보, 영의정 홍봉한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가문의 중심을 이루었다. 홍주원이 선조의 장녀 정명공주와 혼인한 이래 장조의 정비 헌경왕후,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 숙선옹주의 부마 홍현주가 잇달아 나와 조선 후기 왕실과 거듭 인척 관계를 맺었다. 정조 초년에는 홍국영이 세도를 잡아 정국을 좌우하였고 좌의정 홍인한과 영의정 홍낙성도 이 가문에서 나왔다. 학문 쪽으로는 산림경제를 지은 실학자 홍만선과 학자 홍양호가 이름을 남겼다. 2015년 인구는 44,594명이다.
독립유공자 3명 확인
홍범식洪範植
건국훈장 독립장1871년에 나서 1910년에 죽은 관료로 태인군수와 금산군수를 지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이 공포되던 날 금산군수로 재직하던 중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여 순국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3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홍주원
선조의 장녀 정명공주와 혼인한 부마이다. 그의 후손에서 예조판서 홍만용과 영의정 홍봉한이 잇달아 나와 풍산 홍씨의 주된 계보를 이루었다.
홍봉한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이다. 딸이 사도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헌경왕후, 곧 혜경궁 홍씨이다.
홍국영
정조 초년에 권력을 장악하여 세도정치를 편 인물이다. 누이가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이다.
홍만선
농업과 일상 생활의 지식을 집대성한 산림경제를 지은 실학자이다.
참고 자료
같은 홍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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