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이씨
平昌 李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8.1만
2015 인구
11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광李匡
고려 명종 때 태사(太師)를 역임하고 광록대부로 추밀원부사에 올라 백오군(白烏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백오는 평창의 옛 이름으로, 후손들이 이를 따라 평창을 본관으로 삼았다. 다만 한국어 위키백과는 시조를 이윤장(李潤張)으로 기록하고 있어 자료에 따라 시조에 대한 서술이 갈린다.
시조 이광이 봉해진 백오군의 백오(白烏)는 평창의 옛 이름이며, 후손들이 이를 관향으로 삼았다. 중시조는 이광의 8세손 이천기(李天驥)로, 고려 말에 산기상시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아들 이륙·이갈·이과 삼형제를 데리고 장단으로 내려가 절의를 지켰다. 조선 태조가 그 충절을 높이 사 이천기를 평창군(平昌君)에 봉했고, 뒤에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로 받들었다. 본관 평창은 지금의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이다. 문중은 사직공파·사용공파·수사공파 등 열여덟 개 파로 갈렸다.
가문의 역사
세종 때 이영서(李永瑞)는 알성문과에 급제해 이조정랑과 예조정랑을 거쳐 광주목사를 지냈다. 조선 후기의 이승훈(1756~1801)은 1784년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아 조선인 최초의 영세자가 되었고, 이벽·권일신과 함께 초기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되었으며 아들과 손자, 1871년의 증손까지 4대에 걸쳐 순교자를 냈다. 집성촌은 평안북도와 평안남도, 함경남도, 경상북도 등 아홉 개 지역에 있었고,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리에는 순조 때 강원도 영월에서 옮겨온 이사온(李思溫)의 후손이 1800년 무렵부터 세거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2015년 인구는 80,607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 이름 | 생몰년 | 본적 | 운동계열 | 훈격 | 본관 근거 | 공적조서 |
|---|---|---|---|---|---|---|
| 이해동李海東 | 1896–1933 | 경상북도 안동 | 3.1운동 | 대통령표창(1995) | 역대인명정보 | 공훈록 ↗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이영서
세종 때 알성문과에 급제하고 이조정랑과 예조정랑을 거쳐 광주목사를 지낸 문신이다.
이승훈
세례명은 베드로이며 1784년 북경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조선인 최초의 영세자다. 이벽·권일신과 함께 초기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었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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