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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411.1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탐진 안씨

耽津 安氏

2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1만

2015 인구

341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안원린安元璘

고려 공민왕 때 순흥군(順興君)에 봉해진 문숙공 안목(安牧)의 셋째 아들로 전하는 인물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정당문학과 검교중추원사를 지내고 탐진군(耽津君)에 봉해졌다고 하며, 후손들이 그 봉군지를 따라 본관을 탐진으로 삼았다고 한다. 다만 정당문학까지 지낸 인물이 고려사 등 당대 기록에 보이지 않는 점을 들어, 순흥 안씨와 계보를 맞추기 위해 후대에 설정된 인물이며 따라서 순흥 안씨의 분파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있다.

탐진 안씨는 시조 안원린이 탐진군에 봉해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하는 가문으로, 순흥 안씨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다. 본관 탐진은 오늘날 전라남도 강진군 일대의 옛 이름이다. 본래 백제의 동음현이었는데 757년 신라 경덕왕 때 탐진으로 고쳐졌고, 1417년 조선 태종 때 도강현과 합쳐지면서 강진으로 개칭되었다. 이런 연혁 때문에 같은 가문이 강진 안씨(康津安氏)로도 불리며, 인구 통계에서도 탐진과 강진 두 표기로 나뉘어 집계된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명, 무과 급제자 5명, 생원·진사 10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말의 안우는 1352년 군부판서로서 조일신의 난을 평정하고 뒤에 도원수에 임명되어 홍건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조선 초의 안지는 1414년 문과에 급제하여 용비어천가 편찬에 참여하고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안의가 태조 어용과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겨 봉안하였고 안기종은 곽재우 휘하에서 유곡 등지의 전투에 참전하였다. 집성촌은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등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10,513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안효제安孝濟

건국훈장 애족장

1850년에 태어나 1883년 문과에 급제한 문신으로, 1889년 정언으로 있으면서 진령군의 전횡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추자도로 유배되었다. 1895년 단발령에 반대하였고 1910년 국권을 빼앗긴 뒤에는 산중에 은둔하며 일제에 항거하다 1912년 세상을 떠났다. 1982년 대통령표창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2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안희제安熙濟1885–1943경상남도 의령계몽운동건국훈장 독립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안효제安孝濟1850–1916경상남도 의령국내항일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안우

1352년 군부판서로서 조일신의 난을 평정하고 뒤에 도원수에 임명되어 홍건적 격퇴에 큰 공을 세운 무장이다.

조선

안지

1414년 문과에 급제한 문신으로, 용비어천가 저술에 참여하고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조선

안의

1529년에 태어나 1596년에 죽은 인물로, 임진왜란 때 태조 어용과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에 옮겨 봉안하였다.

조선

안기종

1556년에 태어나 1633년에 죽은 인물로, 임진왜란 때 곽재우 휘하에서 유곡 등지의 전투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다.

참고 자료

같은 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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