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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552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칠원 제씨

漆原 諸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만

2015 인구

255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갈영葛嬰

중국 진나라의 장군으로 제갈영(諸葛嬰)이라고도 표기한다. 그 18세손이 촉나라 승상 제갈량이며, 신라 미추왕 때 후손 제갈충(諸葛忠)이 신라로 건너와 지리산 아래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세계가 뚜렷해지는 것은 고려 후기의 제문유부터이다.

칠원 제씨는 중국 진나라 장군 갈영을 시조로 삼는다고 전하며, 그 18세손이 촉나라 승상 제갈량이라 한다. 촉이 망한 뒤 신라 미추왕 때 후손 제갈충이 열세 살 나이로 신라에 망명해 지리산 아래에 자리 잡았다고 전한다. 실제로 계보가 이어지는 중시조는 고려 후기의 제문유(諸文儒, 1266~1338)로, 자는 공화, 호는 삼성이다. 그는 1320년(충숙왕 7) 상왕 충선왕이 토번으로 유배될 때 호종한 공으로 1330년 벽상일등공신에 책록되고 평장사에 임명되었으며 구산부원군(龜山府院君)에 봉해졌다. 구산(龜山)은 칠원의 옛 지명으로, 오늘날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읍 일대가 본관지이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판서공파·참봉공파·충의공파 등 여러 파로 갈렸고 오늘날 열네 개 안팎의 분파가 전국에 세거한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로는 제말·제몽순·제한위 등 무과 3명과 생원시 1명을 냈으며, 임진왜란과 조선 후기의 난리에서 무공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 많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제말은 여러 곳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고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의이다. 그 조카 제홍록은 이순신 휘하에서 전공을 세우다가 정유재란 때 전사하였고, 제말의 6세손 제경욱은 1811년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다가 전사하였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경상남도 고성군,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등지에 있다. 2015년 인구는 20,095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제문유

1266년에 태어나 1338년에 죽은 문신으로 자는 공화, 호는 삼성이다. 1320년 상왕 충선왕이 토번으로 유배될 때 호종한 공으로 1330년 벽상일등공신에 책록되고 평장사에 임명되었으며 구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칠원 제씨의 중시조로 받들어진다.

조선

제말

1592년에 죽은 의병장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여러 곳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의이다.

조선

제홍록

1558년에 태어나 1597년에 죽은 무신으로 1581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으나 정유재란에서 전사하였다.

조선

제경욱

1761년에 태어나 1812년에 죽은 무신으로 제말의 6세손이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였다가 전사하였고 시호는 충양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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