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안 이씨
淸安 李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8만
2015 인구
27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양길李陽吉
문과에 급제해 고려 공민왕 때 검교시랑(檢校侍郞)과 예빈시동정(禮賓寺同正)을 지낸 문신이다. 왕에게 직간하다 노여움을 사 제주판관으로 좌천되었고, 1361년 10월 제주에서 일어난 난에 순절하여 일등공신에 녹훈되고 청안군(淸安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충원(忠元)이며 충원공파의 시조이자 영남파의 중시조로 받들어진다.
청안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일대의 지명으로, 도안(道安)과 청당(淸塘)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청안 이씨에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파가 있어, 이양길을 시조로 하는 충원공파는 영남을 중심으로, 이한번(李漢藩)을 시조로 하는 충간공파는 호남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어왔다. 이양길은 제주판관으로 있다가 1361년 난에 순절해 청안군에 봉해졌고, 이한번은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올라 한림학사와 영광군사를 거쳐 국사원검열관을 지낸 뒤 1363년 홍건적을 막은 공으로 추성보리공신 삼중대광에 책록되고 청안백(淸安伯)에 봉해졌다. 두 파 모두 봉작지인 청안을 관향으로 삼았다.
가문의 역사
충간공파는 이한번의 아들 이광경이 조선에서 병조판서를 지낸 뒤 호남파의 중시조가 되면서 전라도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충원공파는 영남에 세거하였는데, 퇴사재 이응춘의 현손이자 현감 이석노의 아들 이제한이 웅천현감을 지낸 뒤 그 후손이 경상남도 양산 삼호동 일대에 정착해 오늘에 이른다. 문중은 충간공파와 충원공파의 두 계통으로 나뉘어 각각 족보를 이어오고 있다. 2015년 인구는 18,27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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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이한번
고려 충렬왕 때 문과에 올라 한림학사와 영광군사를 거쳐 국사원검열관을 지낸 문신이다. 1363년 홍건적을 막은 공으로 추성보리공신 삼중대광에 책록되고 청안백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간(忠簡)으로 충간공파의 시조다.
이광경
이한번의 아들로 조선에서 병조판서를 지냈고 호남파의 중시조가 되었다.
이제한
퇴사재 이응춘의 현손이자 현감 이석노의 아들로 웅천현감을 지냈으며, 그 후손이 양산 지역에 세거하게 된 입향조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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