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구씨
昌原 具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6만
2015 인구
28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구성길仇成吉
일명 구진(具鎭)이라고도 한다. 서경유수관 시중으로 재임하던 중 왕식렴과 함께 왕규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의안군(義安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945년 내의령에 임명되었다.
시조 구성길이 의안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의안, 곧 지금의 창원을 관향으로 삼았다. 창원의 옛 지명은 신라 때의 구사(仇史)와 의안(義安), 고려 때의 의창(義昌)과 회산(檜山)으로 이어졌고 지명이 바뀔 때마다 관향의 명칭도 자연스럽게 함께 바뀌었다. 지금은 경상남도 창원시가 되었다. 본래 성씨의 한자는 구(仇)였으나 1791년 정조의 명으로 구(具)로 고쳐 쓰게 되었다. 후손은 구종길의 아들 삼형제와 그 동생 구원길의 아들에서 갈라져 부사공파·진사공파·승지공파·처사공파의 네 파를 이루었다.
가문의 역사
과거 급제자는 문과 2명, 무과 9명, 생원시 1명, 진사시 1명을 합해 모두 13명이다. 조선 초의 구자평은 단종·세조·성종 세 임금 때 함경도사를 지냈다. 근현대에는 구용서가 한국은행 초대 총재를 지냈고 구남수가 부산가정법원장을, 구상찬이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집성촌은 함안·밀양·고성·구미·부산·창원·의령·사천·진해·합천·김해·양산 등 영남 일대와 이천·김제·철원 등지에 흩어져 있다. 인구는 1985년 22,126명에서 2000년 14,035명으로 크게 줄었고 2015년에는 회산·합포 등 이표기를 합해 16,10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구자평
단종·세조·성종 때 함경도사를 지낸 인물이다.
구용서
한국은행 초대 총재를 지낸 금융인이다.
참고 자료
같은 구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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