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형씨
晉州 邢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980
2015 인구
39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형옹邢顒
634년(당 태종 정관 8) 고구려 영류왕의 요청으로 당나라에서 여덟 학사의 한 사람으로 평양에 들어와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렀고 관향으로 남양을 받았다고 전한다. 당나라의 문물과 유학을 전하는 데 공헌한 인물로 전해진다.
진주 형씨는 고구려 영류왕 때 당나라에서 건너와 정착하였다고 전하는 형옹을 시조로 한다. 중시조는 고려 때 이부상서를 지낸 형병(邢昞)이며, 그 13세손 형방이 1177년(고려 명종 7)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시중을 지내고 진주 반성(斑城)에 자리 잡으면서 진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전한다. 본관 진주(晉州)는 오늘날 경상남도 진주시 일대이다. 충렬왕 때 형공미가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진양군(晉陽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후대에 19세손 형희의 계통이 전라남도 장흥에 자리 잡아 장흥 형씨로 갈라져 나갔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명과 생원시 5명을 배출하였고, 무과에서는 장흥 형씨 계통에서 7명이 나왔다. 분파로는 평양윤과 이부상서를 지낸 18세손 형군소를 파조로 하는 판사공파와, 세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사를 지낸 형군철을 파조로 하는 병사공파가 있다. 형씨는 본관이 진주로 거의 단일하게 이어져 왔고 여기에서 갈라진 장흥 형씨는 규모가 매우 작아, 진주 형씨가 사실상 형씨 전체를 대표한다. 1985년에는 진주 형씨 5,145명과 장흥 형씨 69명, 2000년에는 진주 형씨 5,822명과 장흥 형씨 455명으로 조사되었으며, 진양 형씨 표기를 합한 2015년 인구는 6,98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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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형적
시조의 2세손으로 신호위상호군을 지냈으며, 928년 임존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고 전한다.
형순
3세손으로 예빈경을 지냈고, 935년 신라가 고려에 항복한 사실을 후당에 알리는 사행을 맡았다고 전한다.
형사보
1522년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도도사와 곤양군수를 지낸 문신이다.
형효갑
1571년에 태어나 1616년 문과에 급제한 문신으로, 당대에 대북3갑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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