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안씨
竹山 安氏
5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7.7만
2015 인구
11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안영의安令儀
구 죽산 안씨가 기세조로 받드는 인물이다. 그 증손 안전(安戩)은 고려 충렬왕 때 도지휘사를 지냈다. 죽산 안씨에는 계통을 달리하는 신 죽산 안씨가 있어, 순흥 안씨 시조 안자미의 6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내고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진 안원형(安元衡)을 시조로 한다.
죽산 안씨는 계통을 달리하는 구 죽산 안씨와 신 죽산 안씨로 나뉜다. 구 죽산 안씨는 안준(安濬)과 안영의를 기세조로 하고, 신 죽산 안씨는 순흥 안씨에서 갈려 나온 안원형을 시조로 한다. 본관 죽산은 고구려의 개차산군(皆次山郡)이었는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개산군(介山郡)으로 고쳤고 고려 초에 죽주(竹州)로 바뀌었다. 1413년(조선 태종 13) 죽산현이 되었다가 1543년(중종 38) 죽산도호부로 승격했고 1896년 경기도 죽산군이 되었으며, 1914년 군면 폐합 때 일부는 용인군에 나머지는 안성군에 편입되었다. 지금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일대가 그 자리다.
가문의 역사
고려 충렬왕 때 안전이 도지휘사를 지냈고, 안극인(安克仁)은 공민왕의 계비 정비 안씨의 아버지로 죽성군에 봉해졌다. 안원형은 공민왕 때 문하시중에 올라 역시 죽성군에 봉해졌다. 안노생(安魯生)은 1376년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태종 때 예조참의와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했으며, 안방준(安邦俊)은 효종 때 공조참의를 지냈다. 집성촌으로는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눌왕리가 있는데 정양공파의 안제세(1582~1642)가 임진왜란 무렵 들어와 자리를 잡은 뒤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왔으며, 1960년대에 약 60가구였던 것이 2019년에는 15가구로 줄었다. 2015년 인구는 77,026명이다.
독립유공자 5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5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안전
충렬왕 때 도지휘사를 지낸 무신으로 기세조 안영의의 증손이다.
안극인
공민왕의 계비 정비 안씨의 아버지로 죽성군에 봉해졌다.
안노생
1376년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태종 때 예조참의와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이다.
안방준
효종 때 공조참의를 지낸 문신이다.
참고 자료
같은 안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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