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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3461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제주 부씨

濟州 夫氏

2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만

2015 인구

346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부을나夫乙那

탐라 개국설화에 등장하는 세 신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라산 북쪽 모흥혈에서 고을나·양을나와 함께 솟아났고, 가죽옷을 입고 사냥으로 살아가다가 벽랑국에서 온 세 처녀를 맞아 혼인하였다고 전한다. 이때 오곡의 씨앗과 송아지·망아지를 얻어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고 탐라국을 열었다는 설화가 있다. 세계가 이어지지 않아 조선 초에 진용교위 후령별장을 지낸 부언경(夫彦景)을 1세조로 삼아 계대를 이어 오고 있다.

제주 부씨는 제주 고씨·제주 양씨와 함께 탐라의 국성으로 꼽히며 세 가문이 같은 유래를 지닌다. 시조 부을나가 솟아났다는 모흥혈은 오늘날 제주시의 삼성혈로 전해지며, 고려사에 인용된 옛 기록에도 세 신인이 이곳 세 구멍에서 나와 벽랑국의 세 처녀와 혼인하여 탐라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본관 제주는 탐라국이 498년 백제에 복속된 뒤 여러 차례 소속이 바뀌어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제주목이었다. 1946년 전라남도에서 갈라져 나왔고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다.

가문의 역사

1세조 부언경의 증손인 부삼로의 손자 6형제 부각(夫恪)·부협(夫協)·부열(夫悅)·부신(夫愼)·부폭(夫幅)·부홍(夫弘)이 제주6파(濟州六派)의 파조가 되었으며, 부삼로의 막내아들 부유성은 경기도 연천으로 옮겨 갔다. 가문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명과 무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문과에는 1767년에 태어난 부종인이 1795년 정조 때 급제하여 대정현감과 성균관사성을 지냈고, 무과에는 부시흥이 1678년, 부사민이 1784년에 각각 급제하였다. 인구는 2000년 9,440명이었고 2015년 인구는 10,222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2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부생종夫生鍾1909–1936제주도 제주문화운동건국훈장 애국장(1991)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부병각夫秉恪1898–1963제주도 제주3.1운동대통령표창(2018)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부언경

조선 초에 진용교위 후령별장을 지낸 인물로, 제주 부씨가 1세조로 받드는 중시조이다.

조선

부종인

1767년에 태어나 1822년에 죽은 문신으로, 1795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정현감과 성균관사성을 지냈다.

조선

부시흥

1657년에 태어난 무신으로, 1678년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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