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 이씨
載寧 李氏
4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만
2015 인구
13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우칭李禹偁
고려 때 보조공신(補祚功臣)에 책록되고 문하시중을 지낸 뒤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경주 이씨 소판공 이거명의 6세손으로 전하며, 그 봉군지를 따라 후손들이 재령을 관향으로 삼았다.
재령(載寧)은 황해도 중앙부에 자리한 고을로, 1217년(고종 4) 거란병의 침공을 막아낸 공으로 재령이라 고쳐 부르고 현으로 승격되었다. 시조 이우칭이 재령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재령을 본관으로 삼았고, 계통은 경주 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전한다. 중시조 이소봉(李小鳳)은 공민왕의 부마이자 상장군을 지냈으며, 그 아들인 중랑장 이일상과 사재령 이일선에서 계통이 다시 나뉜다. 후손은 김포파·청도파·밀양파·근재공파 등으로 분화하였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6명과 무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하였다. 이맹현(1436~1487)은 성종 때 장령·응교·부교리·직제학·부제학을 거쳐 이조참판과 나주목사를 지냈고, 이운룡(1562년생)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부장으로 활약하며 노량해전에서 지휘를 맡았다. 특히 영해파는 1497년 이중현이 영해부사로 부임할 때 그를 따라온 이애가 인량리 나랏골, 곧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정착하고 진성백씨 백원정의 딸과 혼인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이 계통에서 이함(1554~1632)과 이시명(1590~1674), 이휘일(1619~1672)을 거쳐 갈암 이현일(1627~1704)이 나와 퇴계 학맥을 잇는 영남 유학의 중심 가문이 되었으며, 후손들은 영해·영덕·안동·청송·영양 일대에 세거하였다. 그 밖의 집성촌은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진주시·함안군, 경기도 남양주시,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전라남도 광양시, 충청북도 제천시 등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60,095명이다.
독립유공자 4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4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이맹현
성종 때 장령·응교·부교리·직제학·부제학을 거쳐 이조참판과 나주목사를 지낸 문신이다.
이운룡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부장으로 활약하고 노량해전에서 지휘를 맡은 무장이다.
이현일
퇴계 이황의 학풍을 이은 영남학파의 거두로 호는 갈암(葛庵)이다. 성균관 사업과 대사헌을 거쳐 1693년 이조판서에 올랐고, 《갈암집》과 《홍범연의》를 남겼으며 이이의 학설을 비판해 퇴계의 이기호발설을 다시 밝혔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이문열
《삼국지연의》 번역서로 최다 판매 기록을 세운 소설가다.
참고 자료
같은 이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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