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위씨
長興 魏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만
2015 인구
20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위경魏鏡
관서 홍농(弘農) 사람으로 638년 신라 선덕여왕의 초청으로 당 태종이 파견한 팔학사의 한 사람으로 신라에 동래하였다고 전한다. 신라에서 문하습비후와 아찬, 상서시중을 역임하고 회주군(懷州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중시조는 고려 초 대각간시중을 지낸 위창주(魏菖珠)로, 이후 세계가 그로부터 이어진다.
시조 위경이 신라에 정착한 뒤 고려 초 대각간시중을 지낸 위창주를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본관 장흥은 전라남도 남쪽에 있는 지명으로 삼국시대 백제의 고마미지현이었고, 신라에서 마읍현으로 고쳐 보성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서 수녕현(遂寧縣)으로 고쳐 영암의 임내로 두었다가 장흥부에 내속시켰으며, 1413년 태종 13년 장흥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652년 장흥현으로 강등되었고 1896년 전라남도 장흥군이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라도 장흥도호부 수녕의 성으로 위·박·조·함 4성이 기록되어 있다. 수녕이 장흥에 내속되고 관산(冠山)이라는 별호가 있었기에 수녕 위씨(遂寧魏氏)가 장흥 위씨로 개칭되었고 관산 위씨라고도 불렸다.
가문의 역사
중시조 위창주의 5세손 위계정(魏繼廷)이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1101년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를 지내고 1105년 문하시중에 올라 가문을 크게 일으켰으며, 시호는 충렬(忠烈)이고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위창주의 15세손 위덕룡의 네 아들로부터 능주파, 관산파, 행원파, 여천파, 사월파, 관북파의 상계 분파가 시작되었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3명과 무과 급제자 21명을 배출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위대기와 위대경이 이순신 휘하에서 활약하여 전공을 세웠고, 조선 후기에는 실학자 위백규가 호남 실학의 거목으로 이름났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와 장흥읍 행원리,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강진군 강진읍, 완도군 청산면,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강원도 춘천시 남면 등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30,41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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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위계정
1038년에 태어나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좌보궐지제고를 거쳐 선종 때 어사중승이 되었으며, 숙종 때 예부상서와 이부상서, 판한림원사를 거쳐 1101년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1105년 문하시중에 올랐다. 시호는 충렬이며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위원개
1244년 고종 31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와 추밀원부사를 지냈으며, 뒤에 출가하여 충지(沖止)라 이름하였고 시호는 원감(圓鑑)이다.
위대기
무과에 급제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조전장으로 전공을 세웠으며, 이치에서 황진·공시억 등과 함께 권율을 도와 호남 방어에 큰 공을 세웠다. 1594년 해남현감을 지내고 정유재란 때 고향에서 군사를 일으켜 훈련원정을 거쳐 수군절도사가 되었으며, 남원에 충량비가 세워졌다.
위정철
장흥 관산읍 방촌리 출신으로 21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현감·군수·첨사·대도호부사·방어사를 두루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원종일등공신, 1624년 이괄의 난에 참여하여 진무원종일등공신에 훈록되었고, 1631년 심양 회답사로 사행하여 후금과의 예물 문제를 해결하였다.
위백규
호는 존재(存齋)이며 장흥 출신의 조선 후기 실학자다. 조부 위세보에게 글을 배워 제자백가는 물론 천문·지리·율력·복서·산수에 통달하고 특히 역에 정통하였으며, 정조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옥과현감 등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였다. 문집 『존재집』과 저서 『지제지』를 남겼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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