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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098.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인천 이씨

仁川 李氏

2

확인 독립유공자

1

수록 친일 기록

8.4만

2015 인구

109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허겸李許謙

고려 현종 때 상서좌복야 상주국 소성현개국후(邵城縣開國侯)에 제수되고 식읍 1,500호를 받은 인물이다. 가락국 수로왕과 허황후의 후손인 아찬 허기(許奇)의 10세손으로 전한다. 그의 외손녀가 현종의 비로 책봉되면서 가문이 왕실과 이어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인천 이씨는 가락국 수로왕과 허황후의 후손 가운데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가 된 계통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그 후손인 아찬 허기가 신라 경덕왕 때 당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녹산의 난에서 현종을 호위한 공으로 이씨 성을 사성받았고, 그 10세손이 시조 이허겸이라는 것이다. 이허겸의 자손이 소성현 곧 인주로 옮겨 살아 인주 이씨로 불렸고, 인천이 경원군으로 승격되면서 경원 이씨라고도 했다. 본관 인천은 본래 매소홀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소성으로 고쳐 율진군의 영현이 되었고, 1413년(조선 태종 13) 인천군이 되었으며 1949년 인천시, 1981년 직할시로 승격했다. 후대에 양산 이씨와 흥양 이씨, 영산 이씨가 이 가문에서 갈려 나갔다.

가문의 역사

인천 이씨는 고려 문벌귀족의 대표로 꼽힌다. 이허겸의 손자 이자연이 1052년(문종 6) 큰딸을 문종의 왕비로 들인 뒤 나머지 두 딸도 차례로 문종에게 출가시켰고, 문종부터 순종·선종·헌종·숙종·예종을 거쳐 인종에 이르기까지 7대 동안 왕실과 혼인을 거듭해 칠대 어향(七代御鄕)이라 불렸다. 순종·선종·헌종·숙종·인종 다섯 왕의 어머니가 인천 이씨였고 문종·순종·선종·예종·인종 다섯 왕의 왕후 또한 인천 이씨였다. 이자연의 손자 이자겸이 일으킨 난으로 위세가 꺾였으나 고려 말까지 명문거족의 지위는 이어졌다. 문중은 시중공파(이작신)·공도공파(이문화)·쌍명재파(이인로)·충강공파(이징옥) 등으로 갈렸고, 집성촌은 충청북도 영동군·보은군, 충청남도 청양군, 대구 북구, 전라남도 장흥군, 경상남도 의령군·함안군·합천군, 경상북도 경주시 등에 있다. 시조 이허겸의 묘와 묘려인 원인재(原仁齋)가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동에 남아 있다. 2015년 인구는 83,855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이경희

건국훈장 애국장

1880년에 태어나 1949년에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다. 1910년 신민회에 참여했고 1919년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1927년 신간회가 창립되자 본부 총무간사와 경상북도지부장, 대구지회장을 맡았다. 1980년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2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이경희李慶熙1880–1949경기도 경성중국방면건국훈장 애국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이상찬李相瓚1884–1942충청북도 영동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이두황李斗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858년에 태어나 1916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 중추원 부찬의를 거쳐 1908년부터 전라북도 관찰사를 맡았고, 1910년 10월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선총독부 전라북도 장관을 지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 모두 올랐다.

출처 확인 ↗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이자연

시조 이허겸의 손자로 1052년 세 딸을 차례로 문종에게 출가시켜 인천 이씨를 고려 최고의 문벌귀족으로 끌어올렸다.

고려

이자겸

이자연의 손자로 예종과 인종에게 딸을 들여보내 권세를 누렸으나, 그가 일으킨 난으로 가문의 위세가 꺾였다.

고려

이인로

호는 쌍명재(雙明齋)이며 오세재·임춘 등과 죽림고회를 이루어 강좌칠현으로 자처한 문인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화집인 파한집을 남겼고 비서감 우간의대부를 지냈으며, 인천 이씨 쌍명재파의 파조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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