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흥 예씨
義興 芮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3만
2015 인구
318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예낙전芮樂全
고려 인종 때 문하찬성사를 지내고 부계군(缶溪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의흥을 본관으로 삼았다. 묘소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가호리에 있다.
의흥 예씨는 고려 인종 때 문하찬성사를 지낸 예낙전을 시조로 한다. 본관 의흥(義興)은 옛 의흥군 일대로 오늘날 대구광역시 군위군에 해당한다. 고려 초에 의흥군이 되었고 1018년 안동부에 속하게 되었다. 시조의 묘소가 군위군 부계면 가호리에 남아 있어 후손들이 이곳을 종중의 근원지로 여긴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3명, 무과 급제자 5명, 사마시 5명을 배출하였다. 11세에 이르러 홍주파, 수원파, 영산파, 면천파, 상주파, 청도파, 율정파로 나뉘었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청도군·상주시·김천시와 경상남도 밀양시, 경기도 화성시·수원시 등지에 형성되어 있다. 조선 전기에는 대사간을 지낸 예승석과 경주부윤을 지낸 예충년이 나왔고, 근현대에는 국회의원 예춘호와 언론인 예용해가 이 가문에서 나왔다. 2015년 인구는 12,802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예승석
1406년에 태어나 1476년에 죽은 문신으로 시조 예낙전의 8세손이다. 1441년 진사시에, 1447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산현감으로 나가 민폐를 바로잡았다. 좌헌납과 변정원판결사, 이조참의를 거쳐 1468년 대사간에 올랐으며, 세조실록과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공조참판과 한성부우윤을 지냈다.
예충년
1470년에 태어나 1537년에 죽은 문신으로, 성균관대사성과 경주부윤을 지냈다.
예춘호
1927년에 태어나 2019년에 죽은 정치인으로, 제6·7·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예용해
1929년에 태어나 1995년에 죽은 언론인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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