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옥씨
宜寧 玉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3만
2015 인구
23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옥진서玉眞瑞
고구려의 요청으로 당에서 파견된 여덟 학사 가운데 한 사람이라 전한다. 고구려가 망한 뒤 신라에서 국학교수를 지내고 의춘군(宜春君)에 봉해졌으며 문혜(文惠)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후손들이 그 봉호를 따라 본관을 삼았다.
의령 옥씨는 고구려의 요청으로 당에서 건너온 여덟 학사 가운데 한 사람이라 전하는 옥진서를 시조로 한다. 고구려가 망한 뒤 그가 신라에서 국학교수를 지내고 의춘군에 봉해졌으며 문혜라는 시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의춘(宜春)은 의령의 옛 이름이어서 의령 옥씨와 의춘 옥씨라는 두 표기가 오래도록 함께 쓰여 왔으며, 본관지는 오늘날 경상남도 의령군이다. 조선 초에 왕(王)씨 일부가 옥(玉)씨로 성을 바꾸었다는 설이 제기되어 계통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고 전한다.
가문의 역사
고려 말의 옥사온은 1389년(창왕 1) 문과에 급제하였고, 그 사촌인 옥고는 1399년 문과에 급제하여 어사부 장령을 지냈다. 과거 급제자는 문과 5명, 무과 6명, 생원시와 진사시 8명을 합해 19명가량을 냈다. 집성촌은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과 통영시 도산면, 거제시,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등지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23,142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옥사온
옥안덕(玉安德)의 아들로 1389년(창왕 1)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다.
옥고
옥사온의 아우 옥사미(玉斯美)의 아들로 1399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어사부 장령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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