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이씨
原州 李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8.6만
2015 인구
10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신우李申佑
1004년(고려 목종 7) 문과에 급제하고 문종 때 병부상서를 지냈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원주백(原州伯)과 경흥군(慶興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후손들이 원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고 이 계통을 신 원주 이씨라 부른다. 원주 이씨에는 계통을 달리하여 고려 인종·의종 때 병부상서 평장사와 안일호장을 지낸 이춘계(李椿桂)를 시조로 하는 구 원주 이씨도 있다.
원주 이씨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춘계를 시조로 하는 구 원주 이씨와, 이신우를 분적 시조로 하는 신 원주 이씨가 그것이며 인구는 신 원주 이씨 쪽이 훨씬 많다. 본관 원주는 고구려 때 평원군으로 불렸고 940년(고려 태조 23)에 원주로 고쳤으며, 일신현·정원도호부·익흥도호부·성안부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1353년 원주목이 되었다. 신 원주 이씨는 경원군파(파조 이반계)·강릉공파(파조 이영화)·판도공파(파조 이천명)의 세 파로 나뉜다. 구 원주 이씨는 동정공파·병사공파·주부공파·은사공파·교도공파·사용공파·사직공파·갈촌공파·평천공파의 아홉 파로 갈렸다.
가문의 역사
고려 때 이반계(李攀桂, 1334~1392)는 예부상서를, 이천명(李天明)은 판도판서를 지냈고 이을계는 통례원 봉례를 역임했다. 조선에 들어와 이영화(1430~1517)가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냈고, 이계정은 충청수군절도사, 이억복은 함경남도 병마절도사, 이숙형은 회령부사를 맡아 무관을 여럿 배출했다. 조선 후기의 이광정(1674~1756)은 영남을 대표하는 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집성촌은 강원도 원주시와 전라남도 해남군·강진군·진도군·담양군, 경상북도 청송군, 충청북도 단양군 등에 있고, 구 원주 이씨는 원주시와 경기도 양평군·용인시·안성시·평택시, 강원도 횡성군·홍천군·춘천시 일대에 세거해왔다. 2015년 인구는 85,56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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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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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이반계
예부상서를 지낸 문신으로 신 원주 이씨 경원군파의 파조다.
이영화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낸 문신으로 신 원주 이씨 강릉공파의 파조다.
이계정
충청수군절도사를 지낸 무장이다.
이광정
영남을 대표하는 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조선 후기의 유학자다.
이훈동
조선내화를 창업한 기업인이다.
참고 자료
같은 이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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