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이씨
蔚山 李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1.4만
2015 인구
30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철李哲
고려 고종 때 삼중대광으로 문하시중과 판전리사사에 오른 인물이다.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학성군(鶴城君)에 봉해졌는데, 학성은 울산의 옛 이름이다. 후손들이 그 봉호를 따라 울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울산 이씨는 고려 고종 때의 문신 이철을 시조로 한다. 경주 이씨와 같은 뿌리로, 신라의 이알평에서 비롯하여 이거명을 1세로 삼는 계통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전한다. 이철이 몽골의 침입을 물리친 공으로 학성군에 봉해졌고, 학성이 울산의 옛 이름이었으므로 후손들이 울산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본관 울산은 오늘날의 울산광역시 일대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 때 이순광은 사재주부를 지냈고, 조선에 들어 이순진은 목사를, 이의는 한성부좌윤을 지냈다. 후손들은 충청북도 청주와 그 인근 지역에 자리를 잡아 세거해 왔다. 인구는 1985년 4,433명, 2000년 1,967가구 6,328명으로 집계되었다가 이후 크게 늘었다. 2015년 조사에서는 전국에 14,322명이 살고 그 가운데 울산광역시에 3,784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인구는 14,322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이철
고려 고종 때 삼중대광으로 문하시중과 판전리사사에 올랐고 몽골의 침입을 격퇴한 공으로 학성군에 봉해졌다. 울산 이씨의 시조이다.
이순광
고려에서 사재주부를 지낸 인물이다.
이의
조선에서 한성부좌윤을 지낸 인물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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