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계 이씨
羽溪 李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만
2015 인구
25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양식李陽植
고려 때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인물이다. 경주 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계통으로, 후손 이구(李球)에 이르러 본관을 우계로 삼았다고 전한다.
우계 이씨는 고려 때 좌복야를 지낸 이양식을 시조로 한다. 경주 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분적종으로, 중시조 이구가 본관을 우계로 나누어 세계를 이었다. 이구는 초명이 옥(沃)이며 충렬왕 때 원나라에 들어가 약관의 나이에 진사에 급제하고 예빈경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본관 우계(羽溪)는 본래 고구려의 우곡현(羽谷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우계로 고쳐졌으며, 오늘날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옥계면 일대가 그곳이다.
가문의 역사
과거 급제자는 문과 15명, 무과 11명, 생원시 27명, 진사시 17명, 의과 1명을 냈다. 조선 전기의 이수형은 단종이 왕위에서 밀려나자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 은거하여 70년 가까이 단종을 추모하다가 1528년에 죽었다. 조선 중기의 이광식은 무신으로 병조참판을 지냈고, 이복남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전라병사로 남원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조선 후기의 이현상은 문신이자 시인으로 이름났다. 집성촌은 강원도 원주시, 경상북도 달성군·안동군·울진군, 경기도 광주시·남양주시 등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19,585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이구
초명은 옥(沃)이며 충렬왕 때 원나라에 들어가 약관의 나이에 진사에 급제하고 예빈경에 이르렀다. 경주 이씨에서 분적하여 우계를 본관으로 삼은 중시조로 받들어진다.
이수형
1435년에 태어나 1528년에 죽은 문신이다. 단종이 왕위에서 밀려나자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 은거하여 70년 가까이 단종을 추모하며 지냈다.
이광식
1493년에 태어나 1563년에 죽은 무신으로 병조참판을 지냈다.
이복남
1597년에 죽은 무신으로 정유재란 때 전라병사로서 남원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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