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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128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온양 방씨

溫陽 方氏

8

확인 독립유공자

1

수록 친일 기록

8만

2015 인구

112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방지方智

호는 월봉(月峯)이며 당나라 한림학사로서 669년 나당동맹의 문화사절로 신라에 건너왔다고 전한다. 신라에 머물며 설총과 함께 구경(九經)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했다고 전한다. 그 후손 방운(方雲)이 993년(고려 성종 12) 거란이 침입했을 때 공을 세워 온수군(溫水君)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온양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 방지가 신라에 정착한 뒤, 그 후손 방운이 993년 거란의 침입 때 공훈을 세워 온수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온양을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 온양은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동 일대다. 12세 방우선(方于宣)의 13세손 대에서 판서공파·간의공파·안렴사공파·태상경공파·대장군공파·광록대부공파·상락부원군공파의 일곱 파로 갈렸다. 이 가운데 태상경공파는 뒤에 군위 방씨로 나뉘었다.

가문의 역사

고려 명종 때 방희진은 대제학과 상서령을 지냈고, 방우선은 국자시에 장원해 평양부윤에 올랐으며, 방순은 문과에 급제한 뒤 고려에 절의를 지켰다. 조선에 들어와 방강은 세종 29년 문과에 급제해 좌승지를 지냈고 방유령(1460~1529)은 병조판서에 올랐다. 방진(1514~?)은 보성군수를 지냈으며 이순신의 장인이다. 임진왜란 때 낙안군수 방덕룡(1561~1598)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집성촌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과 성남시,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경상북도 영천시, 경상남도 합천군, 평안북도 정주시, 함경북도 부령군 등에 있다. 2015년 인구는 80,445명이다.

독립유공자 8명 확인

방정환

건국훈장 애국장

1899년에 태어나 1931년에 세상을 떠난 아동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다. 1919년 3·1운동 때 독립신문 발행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고 조선독립신문 배포에도 관여했으며, 1920년 개벽사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 행사를 처음 열고 1923년 월간 잡지 어린이를 창간해 아동문학의 터를 닦았다. 1978년 금관문화훈장, 1980년 건국포장에 이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방순희

건국훈장 독립장

1904년에 태어나 1979년에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다.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함경남도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했고, 제31회 정기의회에서는 재적의원 33인 가운데 유일한 여성 의원이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8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방순희方順熙1904–1979함경남도 원산임시정부건국훈장 독립장(1963)위키백과 ↗공훈록 ↗
방일진方一鎭1888–1921평안북도 정주만주방면건국훈장 애국장(1991)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방정환方定煥1899–1931서울문화운동건국훈장 애국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방한민方漢旻1900–1968충청남도 논산만주방면건국훈장 애국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방사겸方四兼1881–1955평안남도 평양미주방면건국포장(2011)위키백과 ↗공훈록 ↗
방영화方永化1872–?경기도 양주미주방면대통령표창(2015)위키백과 ↗공훈록 ↗
방상섭房塽燮1916–1940전라남도 장흥국내항일대통령표창(199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방봉순方鳳淳1918–1998황해도 안악광복군대통령표창(1963)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방응모方應謨

언론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1883년에 태어나 1950년 무렵 세상을 떠났다. 1932년 조선일보에 영업국장으로 입사해 이듬해 부사장을 거쳐 사주 겸 사장이 되었고 1950년까지 신문사를 이끌었다. 1933년 고사기관총 구입비를 헌납하고 1935년 잡지 조광을 창간했으며, 1937년 경성방송국 시국강연과 1938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에 참여했다.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모두 올랐다.

출처 확인 ↗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방희진

명종 때 대제학과 상서령을 지낸 문신이다.

고려

방우선

국자시에 장원하고 평양부윤에 오른 문신으로, 그의 13세손 대에서 온양 방씨가 일곱 파로 갈렸다.

조선

방유령

병조판서에 오른 문신이다.

조선

방진

보성군수를 지낸 무장으로 이순신의 장인이다.

조선

방덕룡

낙안군수로 임진왜란에 참전해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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