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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382.3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옥천 육씨

沃川 陸氏

1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3만

2015 인구

238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육보陸普

중국 절강성 출신으로, 927년(고려 태조 10) 후당 명종이 문학전례지신을 뽑아 신라에 보낼 때 팔학사의 한 사람으로 동래하였다고 전한다.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고려 충렬왕 때 주부를 역임한 육인단(陸仁端)을 1세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옥천 육씨는 중국 절강성 출신으로 후삼국시대에 동래하였다고 전하는 육보를 시조로 한다. 927년 후당 명종이 문학전례지신을 뽑아 신라에 보낼 때 팔학사의 한 사람으로 왔다는 것이다. 중간 계대가 실전되어 고려 충렬왕 때 주부를 역임한 육인단을 1세조로 하여 계보를 잇는다. 본관 옥천은 신라의 고시산군이었다가 경덕왕 때 관성군으로 고쳐졌고, 1313년 옥주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옥천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경상도 관할에서 충청도로 옮겨졌고, 1896년에 충청북도 옥천군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가문의 역사

육인단의 손자 육거원의 아들 대에서 덕곡공파(육려)·목사공파(육항)·순찰사공파(육비)·낭장공파(육수)의 네 파로 갈렸다. 육대춘은 1546년 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를 지냈고, 성리학자 육용정(1843~1917)은 『의전합고』를 펴냈으며, 육종윤(1863~?)은 진사를 거쳐 외부 교섭국장을 지냈다. 근현대에는 독립운동가이자 제헌 국회의원인 육홍균,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 육지수, 무용가 육완순 등이 나왔다. 과거 급제자는 문과 1명, 무과 7명, 생원·진사 11명을 배출하였다. 집성촌은 충청북도 옥천군 청성면 도장리와 옥천읍,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마하리와 원흥리 등에 있다. 2015년 인구는 22,593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육홍균陸洪均

건국훈장 애족장

1922년 일본에서 무정부주의를 표방한 비밀결사 흑우회에 가입하였고, 1923년 박열·김중한 등과 불령사를 조직했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출옥한 뒤에도 항일운동을 이어가다 1939년 다시 검거되어 1년 3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협동조합과 옥성농우회를 통해 지역 농민운동을 이끌었으며 제헌 국회의원을 지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육홍균陸洪均1900–1983경상북도 선산일본방면건국훈장 애족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육대춘

1546년 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를 역임한 문신이다.

조선

육용정

1843년에 태어나 1917년에 세상을 떠난 성리학자로, 『의전합고』를 펴냈다.

근현대

육영수

1925년에 태어나 1974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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