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권씨
醴泉 權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531
2015 인구
42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흔적신昕迪臣
예천 권씨의 1세 시조로 본래 성은 흔(昕)씨였다. 6세 되는 흔섬(昕暹)이 고려 충목왕의 이름인 흔(昕)을 피해 어머니의 성인 권씨로 고쳐 권섬(權暹)이 되면서 오늘의 예천 권씨가 성립하였다.
예천 권씨는 흔적신(昕迪臣)을 1세 시조로 하는 가문으로, 본래 성은 흔(昕)씨였다. 6세 중시조 흔섬은 고려 충목왕의 이름이 흔(昕)이었으므로 국명에 따라 성을 바꾸어야 했고, 어머니의 성이자 흔씨 1세와 3세의 처가 성이기도 한 권(權)을 새 성으로 삼아 권섬(權暹)이 되었다. 이때 본관을 예천으로 정하면서 예천 권씨가 시작되었다. 본관 예천은 오늘날 경상북도 예천군 일대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하였다. 5세 권선(權善) 대에는 오행, 오기, 오복, 오윤, 오상 다섯 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오복문(五福門)이라 불렸다. 1498년 무오사화 때는 가문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8세 권문해는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영남학파의 주류로 활약하였다. 집성촌은 경상북도 예천군과 안동시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4,53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권맹손
1408년과 1427년 두 차례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과 함길도 관찰사, 공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1450년 이조판서를 거쳐 중추원 부사에 이르렀고 시호는 제평이다.
권문해
1560년 명종 1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안동부사와 대구부사, 공주목사 등을 지냈다. 퇴계 이황의 제자로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으로 꼽히는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20권을 저술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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