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천씨
潁陽 千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10.7만
2015 인구
92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천암千巖
명나라의 도총장(都總將)과 판도승상(版圖丞相)을 지낸 인물로, 영양(潁陽)을 관향으로 삼은 시조이다.
시조 천암(千巖)은 명나라에서 도총장과 판도승상을 지낸 인물로, 그 후손이 영양을 관향으로 삼았다. 천씨의 연원은 중국 쓰촨 지역 저족(氐族) 출신으로 삼국시대 저족 왕 천만(千萬)의 이름에서 성이 유래했다고 전하며, 산시성을 거쳐 허난성 영양에 정착했다. 한국의 천씨는 임진왜란 때 귀화한 중시조 천만리의 후손이 절대다수를 이룬다.
가문의 역사
중시조 천만리(千萬里)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명나라 조병영양사 겸 총독장으로 이여송 휘하에서 참전해 평양·곽산 등지에서 전공을 세우고 조선에 귀화했다. 자헌대부 봉조하의 벼슬을 받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이후 조선에서 천경주·천태주 등 무과 급제자를 배출했고, 1892년 알성시 갑과에 장원한 천광록은 성균관 전적을 지냈다. 근현대에는 시인 천상병, 화가 천경자, 사학자 천관우 등 문화예술계 인물이 두드러진다. 2015년 기준 인구는 106,918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천세헌千世憲
건국훈장 독립장1903년 하와이로 이주한 뒤 1910년 뉴욕으로 옮겨 대한인국민회 뉴욕지회에서 활동하고 1914년 흥사단에 가입했으며, 1919년 4월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에 참석하고 1921년 대한민족대표단의 일원으로 상하이에 파견되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천병림千炳林
건국훈장 독립장충남 부여 출신으로 중국에 망명해 의열단에 가담했고 1932년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에 의열단 대표로 참여했으며, 1935년 민족혁명당 중앙검사위원, 1936년 이후 민족혁명당 화남지부 총책임자로 활동했다. 1994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천장욱千章郁
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일제강점기에 여러 지역의 군수를 역임하며 토지조사사업에 협조했고, 1912년 한국병합기념장과 1915년 다이쇼대례기념장을 받았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천만리
임진왜란 때 명군 장수로 참전한 뒤 조선에 귀화해 화산군에 봉해진 중시조이다.
천광록
1892년 알성시 갑과에 장원급제해 성균관 전적을 지낸 문신이다.
천상병
〈귀천〉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천경자
독특한 채색화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천관우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으로 동아일보 주필을 지냈다.
천정배
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 제57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같은 천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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