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순 태씨
永順 太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626
2015 인구
42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태금취太金就
고려 고종 때 몽골군을 격퇴한 공으로 영순군(永順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 봉호를 따라 본관을 영순으로 삼았다.
영순 태씨는 고려 고종 때의 무장 태금취(太金就)를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본관 영순은 오늘날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일대이다. 태씨의 원시조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大祚榮)으로, 본래 성은 대씨(大氏)였다고 전한다. 대씨가 태씨로 바뀐 내력에 대해서는 934년 발해 멸망 후 태자 대광현이 고려로 망명하자 고려 태조가 태씨를 하사했다는 설과, 동국통감(東國通監)에서 대조영을 태조영(太祚榮)이라 적은 뒤로 자손들이 태씨를 칭하게 되었다는 설이 함께 전한다.
가문의 역사
조선 시대에 문과 1명, 생원시 4명, 진사시 3명, 무과 4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태두남(太斗南)은 형조좌랑과 정랑, 개령현감, 경상도도사 등을 지냈다. 2015년 인구는 4,626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태두남
1486년에 태어나 1537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이다. 형조좌랑과 형조정랑, 개령현감, 경상도도사 등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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