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현씨
延州 玄氏
4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5.6만
2015 인구
14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현담윤玄覃胤
고려 의종 때 도령중랑장(都領中郞將)이 되었고, 명종 때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라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진 인물이다. 아들 현덕수와 함께 서북면에서 반란군을 막아낸 공로로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
연주(延州)는 본래 고려의 안삭군(安朔郡)이었는데 970년 연주로 고쳐 불렸고, 1419년 영변대도호부가 되었다가 1895년 영변군이 되었다. 지금의 평안북도 영변군 일대다. 시조 현담윤이 연산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연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지가 서북 지역인 까닭에 세거지도 오랫동안 평안도 일대에 자리 잡았으며, 분단 이후에는 후손 상당수가 남쪽에 정착하였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7명, 무과 6명, 생원시 2명, 진사시 5명이 확인된다. 시조의 아들 현덕수(?~1215)는 1174년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병부상서에 올랐고 기로회(耆老會) 아홉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조선 후기에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 현석문(1799~1846)과 연천군수·중추원지사를 지낸 문신 현일(1807~1876)이 나왔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만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현정경과 현익철, 3·1운동에 참여하고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현상윤(1893~1950), 임업 육종학자 현신규(1911~1986), 제24대 국무총리 현승종(1919~2020), 흥남 철수를 이끈 의사 현봉학(1922~2007) 등이 잇달아 배출되었다. 2015년 인구는 56,047명이다.
독립유공자 4명 확인
현익철玄益哲
건국훈장 독립장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해 한족회에 들어갔고, 1925년 정의부에 참여했으며 1926년 4월 고려혁명당 결성을 주도했다. 1937년 4월 조선혁명당 재건에 힘썼고, 1938년 5월 창사에서 한국국민당·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의 3당 통합을 협의하던 중 암살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4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현상윤玄相允
교육·학술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교육·학술 부문 등재
1919년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 송진우와 함께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1920년 복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1943년부터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거쳐 1947년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이 되었으며 《조선유학사》와 《조선사상사》를 남겼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태평양전쟁을 지원하는 친일 성격의 글을 여럿 발표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교육·학술 부문에 올랐다. 1940년 창씨개명 권고는 거절하였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현덕수
1174년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병부상서에 오른 인물로, 기로회 아홉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현석문
기해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이다.
현신규
농촌진흥청장을 지낸 임업 육종학자다.
현승종
제24대 국무총리를 지낸 법학자이자 관료다.
현봉학
뉴저지주립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지낸 의학자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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