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 명씨
延安 明氏
1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7만
2015 인구
21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명옥진明玉珍
1330년 무렵 중국 호북성 수주(隨州)에서 태어나 1366년에 죽은 인물이다. 원나라 말기 서수휘의 무장으로 활동하다가 중경을 함락시키고 1362년 촉왕을 칭하며 대하(大夏)를 세웠다. 그가 죽은 뒤 아들 명승이 왕위를 이었으나 명나라 태조 주원장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1372년(공민왕 21) 어머니 팽씨와 함께 고려로 망명하였다.
연안 명씨는 원나라 말 사천 지역에 대하를 세운 명옥진을 시조로 한다. 명옥진이 죽은 뒤 아들 명승이 명나라 세력에 밀려 1372년 고려로 망명하면서 이 땅에 뿌리를 내렸다. 본관 연안(延安)은 황해도 연안으로, 시조의 사당이 세워지고 자헌공 명의(明義)의 후손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같은 시조에서 갈린 서촉 명씨(西蜀明氏)와 뿌리가 같아 두 본관 표기가 함께 쓰인다. 서촉은 명옥진이 대하를 세운 중국 사천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가문의 역사
고려에 망명한 명승의 네 아들에게서 자헌공파(명의), 총랑공파(명현), 부사공파(명준), 시랑공파(명신)의 네 분파가 갈렸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4명, 무과 3명, 생원·진사시 15명의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명광계는 157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조헌 등과 함께 청주와 금산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청양군과 전라남도 고흥군·강진군·해남군 등지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27,133명이다.
독립유공자 1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명광계
1543년에 태어나 1592년에 죽은 문신이다. 진사를 거쳐 157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 등과 함께 청주와 금산 전투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명완벽
1842년에 태어나 1929년에 죽은 국악인으로 가야금 연주자로 활동하였다.
명노승
1946년에 태어난 법조인으로 제45대 법무부 차관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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