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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102.9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신창 표씨

新昌 表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2.9만

2015 인구

210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표대박表大㺪

중국 후주(後周)의 이부상서를 지낸 인물이다. 후주가 멸망하자 960년(광종 11) 장·방·위·변·윤·진·감·황보 등 여덟 성씨와 함께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전한다. 후대에는 충숙왕 때 좌리공신에 올라 온창백(溫昌伯)에 봉해진 표인려(表仁呂)를 기세조로 삼아 계보를 잇는다.

신창 표씨는 중국 후주의 이부상서를 지낸 표대박을 시조로 한다. 후주가 멸망하자 960년 장·방·위·변·윤·진·감·황보 등 여덟 성씨와 함께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전하는 귀화 성씨 계통이다. 이후 충숙왕 때 좌리공신에 올라 온창백에 봉해진 표인려를 기세조로 삼는다. 본관 신창(新昌)은 백제의 굴직현이었는데 757년 기량현으로 고쳐 온정군에 속하였고 940년 신창현으로 개칭되었으며, 오늘날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일대에 해당한다.

가문의 역사

조선 시대에 표계가 1429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표연말은 1472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을 지냈다. 표빙은 1513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표헌은 명나라를 상대한 통역관으로 활동하였다. 표정준은 1637년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와 첨사를 역임하고 현감에 이르렀다. 근현대에는 제헌 국회의원 표현태, 초대 인천시장을 지낸 표양문, 제20대 국회의원 표창원 등이 나왔다. 2015년 인구는 28,89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표연말

1449년에 태어나 1498년에 죽은 문신이다. 1472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제학을 지냈다.

조선

표빙

1513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문신이다.

조선

표정준

1637년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와 첨사를 역임하고 현감에 이르렀다.

근현대

표양문

1907년에 태어나 1962년에 죽은 정치인으로 초대 인천시장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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