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설씨
淳昌 薛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3.7만
2015 인구
18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설거백薛居伯
신라 건국 무렵 진한 명활산 고야촌의 촌장으로서 6부 촌장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박혁거세를 신라의 초대 임금으로 추대한 인물로 기록되어 설씨의 시조로 받들어진다. 순창 설씨는 그 후손 설자승이 1124년 호부시랑에 올라 순화백에 봉해지면서 순창을 본관으로 분관하였다.
설씨의 시조는 신라 6부 촌장 가운데 한 사람인 설거백으로 전하며, 그 36세손 설자승이 고려에서 호부시랑을 지내고 순화백에 봉해지면서 순창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본관 순창은 전북특별자치도 남부 중앙에 자리한 고을로, 본래 백제의 도실군이었다.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순화군으로 고쳐졌고 940년 고려 태조 때 순창으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다. 순창 설씨는 이 분관 이후 고려 중후기에 걸쳐 중앙 관계에 진출한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가문의 역사
고려 고종 때 설신이 과거에 급제해 1216년 함풍현 감무로 나간 뒤 경상도안찰사와 상서좌복야를 지내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났다. 그 아들 설공검은 1224년에 태어나 1302년에 죽었는데, 동지공거와 좌승지를 거쳐 찬성사에 이르고 중찬으로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시호는 문량(文良)이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2명과 무과 급제자 3명, 사마시 합격자 13명을 배출하였다. 집성촌은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금과면, 전라남도 진도군, 경상남도 밀양시와 의령군, 함경남도 일대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6,987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설자승
1124년 호부시랑이 되고 순화백에 봉해져 순창 설씨의 분관조가 된 인물이다.
설신
과거에 급제해 1216년 함풍현 감무로 나갔고 경상도안찰사와 상서좌복야를 지냈으며 추밀원부사에 올랐다. 설공검의 아버지이다.
설공검
1224년에 태어나 1302년에 죽었다. 1271년 세자를 호종한 공으로 우부승선에 오른 뒤 동지공거·좌승지·찬성사를 거쳐 중찬에 이르렀고 시호는 문량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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