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이씨
星州 李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2명
수록 친일 기록
20.4만
2015 인구
43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순유李純由
신라 말 이부상서를 거쳐 경순왕 때 재상에 올랐다고 전하는 인물이다.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자 이를 따르지 않고 이름을 극신(克臣)으로 고친 뒤 성주 지역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켰다고 한다.
시조 이순유가 신라 멸망 후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 땅에 자리 잡으면서 후손들이 성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성주(星州)는 옛 가야 소국이 있던 곳으로 고려 때 경산부(京山府)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때 성주목이 되었다. 가문이 크게 일어난 것은 고려 후기의 중시조 이장경(李長庚) 대부터로, 그의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해 이름을 떨쳤다.
가문의 역사
이장경의 다섯 아들에서 갈라진 다섯 계파가 오늘날 성주 이씨의 근간을 이룬다. 고려 말에는 이조년이 예문관대제학에 오르고 손자 이인임이 문하시중으로 정권을 잡는 등 최고 문벌의 하나로 꼽혔으며,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불리는 이숭인도 이 가문 출신이다. 조선에서도 이직이 영의정을 지내는 등 문과 급제자를 다수 배출했고,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선대도 성주 이씨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이종일李鍾一
건국훈장 대통령장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자신이 운영하던 보성사에서 기미독립선언서 3만 5천 부를 인쇄해 전국에 배포했다. 이후 조선어연구회 활동으로 한글 연구에도 힘썼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이종린李鍾麟
종교·문화·언론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천도교 지도자이자 언론인으로 3·1 운동 당시 조선독립신문 발행에 참여했으나, 일제 말기 시국 협력 단체와 언론 활동을 통해 전쟁 협력에 나서 친일인명사전과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함께 올랐다. 민족대표 이종일의 친척 동생이다.
출처 확인 ↗백년설李昌民
문화·언론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재
본명은 이창민으로 경북 성주 출신의 인기 가수였다. 일제 말기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등 지원병을 미화한 군국가요를 다수 취입해 친일인명사전 음악 부문에 수록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이조년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문신으로 시조 <다정가>를 남긴 문장가이다.
이인임
고려 말 문하시중으로 권력을 잡았으나 1388년 정월 최영·이성계에게 축출되어 경산부에 안치된 정치가이다.
이숭인
이색·정몽주와 더불어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성리학자이다.
이직
조선 개국공신으로 세종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시조 <까마귀 검다 하고>로 알려져 있다.
이순원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은비령> 등을 쓴 소설가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으로 호남에서 당선된 보수정당 국회의원으로 화제가 되었다.
참고 자료
같은 이씨의 다른 가문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