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여씨
星州 呂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3만
2015 인구
234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여어매呂禦梅
당나라 희종 건부 4년에 황소의 난을 피해 신라로 건너와 전서를 지냈다고 전한다. 신라 헌강왕 때 성주 벽진에 정착하여 후손들이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
시조 여어매가 성주 벽진에 자리를 잡은 이래 후손들이 성주를 관향으로 삼았고, 성산(星山) 여씨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중시조 여양유(呂良裕)는 고려 충렬왕 때 성주에서 태어나 삼중대광에 오른 인물로, 우왕 6년 이성계가 운봉에서 왜장 아지발도를 무찌를 때 군량 공급을 맡아 그 공으로 삼중대광 훈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여양유의 형 여임청 계통이 함양 여씨가 되고 여양유 계통이 성주 여씨가 되어, 두 가문은 시조는 같으나 세보는 따로 이어진다. 성주는 6가야 가운데 하나인 성산가야가 있던 곳으로 신라가 이를 병합한 뒤 본피현이라 부르다가 757년 신안현으로 고쳐 성산군에 속하게 하였고 현재는 경상북도 성주군이다. 후손은 중랑장 여위충의 후예인 대구 가창파, 판도판서 여위현의 후예인 성주파, 의성현령 여자용의 후예인 김산파 등으로 나뉜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13명과 생원진사시 17명을 합해 모두 30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여응구는 1572년, 여대로는 1583년, 여수징은 1666년에 각각 문과에 급제하였다. 여희림은 1516년 고향에 내려가 주자가 가감하고 증보한 『여씨향약』을 시행하였고, 1519년 현량과가 설치되자 형 여희단과 함께 천거되었으나 응시를 거절하여 기묘사화의 화를 면하였으며 성주의 천곡사에 제향되었다. 집성촌은 성주군 벽진면 수촌리와 김천시 구성면, 대구 가창면 행정리 등에 형성되었고 청도와 경산에도 세거지가 있다. 2015년 인구는 22,96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여희림
1481년에 태어나 1553년에 세상을 떠난 학자로 자는 천지, 호는 원정이다. 1516년 고향에 내려가 『여씨향약』을 시행하였고 1519년 현량과에 천거되었으나 응시를 거절해 기묘사화의 화를 면하였다. 1538년 다시 등용되어 지평에 이르렀으며 성주의 천곡사에 제향되었다.
여대로
1552년에 태어난 문신으로 1583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여응구
1572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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