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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961.5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부림 홍씨

缶林 洪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5만

2015 인구

296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홍란洪鸞

고려 초에 남양 홍씨에서 갈라져 나와 부림현(缶林縣)으로 옮겨 살면서 본관을 부림으로 삼았다고 전한다. 그 뒤 자손이 번성하여 부계면 대율리 일대에 터를 잡았다. 가문에서는 고려 중엽 직장(直長)을 지낸 홍좌(洪佐)를 기세조로 받든다.

부림 홍씨는 고려 초에 부림현으로 옮겨 살며 본관을 정하였다는 홍란을 시조로 하고, 고려 중엽 직장을 지낸 홍좌를 기세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본관 부림(缶林)은 오늘날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일대의 옛 지명이어서 이 가문은 부계 홍씨(缶溪洪氏)라고도 불린다. 고려 말 문하사인을 지낸 홍로가 군위에 정착한 뒤로 그의 후손들이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마을에 남아 있는 대율리 대청은 부림 홍씨 집성촌의 내력을 전하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가문의 역사

가문은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였다. 고려 말의 홍로는 한림학사와 문하사인을 지냈고 군위에 자리를 잡아 뒷날 집성촌의 바탕을 마련하였다. 조선 전기의 홍귀달은 1460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뒤 대제학과 대사헌, 이조판서를 두루 지내 가문의 이름을 크게 높였으나 연산군에게 거슬려 유배 길에 목숨을 잃었고 중종반정 뒤 신원되었다. 조선 중기의 홍호는 대사간을 지냈다. 집성촌은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율곡리 등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15,301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홍로

1366년에 태어나 1392년에 죽었으며 한림학사와 문하사인을 지냈다. 군위에 정착한 입향조로, 그의 후손들이 부계면 대율리 한밤마을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조선

홍귀달

1438년에 태어나 1504년에 죽은 문신으로 자는 겸선(兼善), 호는 허백당(虛白堂)·함허정(涵虛亭)이다. 146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경주부윤·대사성·대사헌·호조판서·이조판서·대제학을 지냈다. 1504년 손녀를 궁중에 들이라는 왕명을 거역하여 장형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되던 중 교살되었으며, 중종반정 뒤 신원되고 시호 문광(文匡)을 받았다. 문집으로 허백정문집(虛白亭文集)이 전한다.

조선

홍호

1586년에 태어나 1646년에 죽은 문신으로 대사간을 지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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