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선씨
寶城 宣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2만
2015 인구
167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선윤지宣允祉
고려 우왕 때 문연각학사 자격으로 고려에 와서 전라도관찰사 겸 안렴사로 전라도 해안에 넘나들던 왜구를 소탕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보성 선씨는 고려 말 전라도관찰사 겸 안렴사를 지낸 선윤지(宣允祉)를 시조로 한다. 선씨의 득성 시조로는 중국 주나라 문왕의 아들 희정(姬靜)이 전하는데, 그 시호인 선(宣)을 후손들이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선씨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전라도 보성의 토성(土姓)으로 기록되어 있다. 17세기에 족보를 편찬하면서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되는 최초의 관직자인 우의정 추증 선형의 고조부 선윤지를 시조로 정하였다. 본관인 보성은 오늘날 전라남도 보성군이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7명, 무과 29명, 생원시 6명, 진사시 9명, 음관 4명, 음양과 1명의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무과 급제자가 두드러지게 많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여러 인물이 전사하거나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한산도 대첩과 행주 대첩에 참전한 선거이, 정유재란 울산 전투에서 전사한 선극례, 평양성 전투에서 순절한 선여경이 나왔고, 병자호란 때에는 쌍령 전투에서 전사한 선세강이 있었다. 1831년 오충사(五忠祠)가 사액되어 시조 선윤지와 함께 후손 선형·선거이·선세강·선약해가 배향되었다. 족보는 1681년 신유초고를 시작으로 1749년 기사보에서 처음 완성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 집성촌은 전라남도 보성군에 있으며 2015년 인구는 41,876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선형
1434년에 나서 1479년에 죽은 무신으로 세조와 성종 때 24년 동안 당상관을 지냈다. 원종공신 2등과 정충적개공신 3등, 좌리공신 4등에 책봉되었고 유성군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선거이
1545년에 나서 1598년에 죽은 무신으로 전라우도수군절도사와 전라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한산도 대첩과 행주 대첩에 참전하였고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봉되었으며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선세강
1576년에 나서 1636년에 죽은 무신으로 평안도 벽단첨사와 홍주영장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쌍령 전투에서 전사하였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선약해
1579년에 나서 1643년에 죽은 무신으로 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지냈다. 청나라에 특사로 파견되어 심양을 다녀오며 심양사행일기를 남겼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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