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진 이씨
碧珍 李氏
2명
확인 독립유공자
1명
수록 친일 기록
10.9만
2015 인구
90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이총언李悤言
858~938년의 인물로 통일신라 말 벽진군(碧珍郡)의 유력 호족이었으며, 고려 태조를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에 봉해지고 벽진장군으로 불렸다.
시조 이총언(李悤言)은 신라 말 벽진군을 지키던 호족으로, 고려 태조가 팔공산 전투에서 패해 벽진군으로 들어오자 아들 이영(李永)에게 군사를 주어 개경까지 종군하게 하는 등 왕건을 도왔고 그 공으로 삼중대광에 올랐다. 본관 벽진(碧珍)은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일대의 옛 지명으로, 성산가야(벽진가야)에 속했다가 신라가 정벌한 뒤 본피현으로 바뀌었고 뒤에 벽진군이 되었다.
가문의 역사
산화공파(이견간)·대장군파(이성간)·금릉공파(이당개)·문정공파(이극송) 등으로 분파했으며 성주·칠곡·합천·의령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는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 이맹전(李孟專), 중종 대 대사헌·이조판서를 지낸 이장곤(李長坤), 인조 대 강화도에서 순절해 좌의정에 추증된 이상길(李尙吉) 등을 배출했다. 조선 말에는 위정척사론의 태두 화서 이항로가 나와 최익현·김평묵 등 수많은 문인을 길러 한말 의병운동의 사상적 토대를 놓았다. 2015년 기준 인구는 109,267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친일 행적 기록 1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이용구李容九
친일단체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동학 출신으로 러일전쟁 때 일본군에 협조했고 1905년 시천교를 세웠으며, 일진회 회장으로서 고종과 이완용·통감에게 한일합방 건의서를 올려 병합 찬성 여론을 주도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다.
출처 확인 ↗가문의 주요 인물
이총언
고려 개국에 공을 세워 벽진백에 봉해진 시조이다.
이맹전
단종 폐위 후 벼슬을 버리고 절의를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이장곤
중종 때 대사헌·이조판서를 지낸 문신으로 갑자사화 때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후 등용되었다.
이상길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해 좌의정에 추증된 문신이다.
이항로
화서(華西)라는 호로 알려진 성리학자로 위정척사론을 정립하고 최익현을 길러냈다.
이언주
변호사 출신으로 제19·20·22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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