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릉 두씨
杜陵 杜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5,257
2015 인구
415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두교림杜橋林
명나라에서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지냈다. 그의 아들 두사충이 임진왜란 때 원병을 따라 조선에 들어와 그대로 정착하면서 한국의 두릉 두씨가 이어졌다.
두릉 두씨는 명나라에서 기주자사를 지낸 두교림(杜橋林)을 시조로 하는 귀화 성씨이다. 본관 두릉은 중국 장안(長安) 남쪽에 있던 지명이다. 시조의 아들 두사충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들어와 정착하면서 한반도에 뿌리를 내렸다.
가문의 역사
두사충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구원군으로 조선에 들어와 수륙지주주사로 활약한 뒤 조선에 남았으며, 당나라 시인 두보의 21세손으로 전한다. 그는 경상도 대구에 머물러 살았고 이후 자손들이 성주군과 함흥 등지로 옮겨 갔다. 집성촌은 전라북도 군산시와 임실군, 익산시 등에 형성되어 있다. 2015년 인구는 5,257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두사충
시조 두교림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구원군으로 조선에 들어와 수륙지주주사로 활약하였다. 전쟁 뒤 조선에 정착하여 경상도 대구에 살았으며 당나라 시인 두보의 21세손으로 전한다.
두량필
병자호란 때 활동한 무신이다.
참고 자료
다른 가문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