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스캐너
본관 인구 1748.9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표기 변형 합산

남양 홍씨

南陽 洪氏

10

확인 독립유공자

2

수록 친일 기록

48.9만

2015 인구

17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홍은열洪殷悅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 태사에 올랐으며 당홍계(唐洪系)의 1세조다. 전설상의 시조는 당나라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 때 들어와 유학을 가르쳤다는 홍천하(洪天河)로 전한다.

남양 홍씨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을 본관으로 하되 계통이 둘로 나뉜다. 당나라에서 건너왔다는 홍천하를 원조로 삼고 고려 개국공신 홍은열을 1세조로 하는 계통을 당홍계(唐洪系), 대대로 당성(남양)에 살던 토착 사족으로 고려 고종 때 금오위 별장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계통을 토홍계(土洪系)라 한다. 두 계통은 본관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집안이며, 인구의 대부분은 당홍계가 차지한다.

가문의 역사

당홍계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93명, 정승 8명, 대제학 2명, 청백리 3명, 왕비 1명, 부마 4명을 배출한 대표적 명문으로 남양군파(홍주)와 문정공파(홍언박)가 인구의 70%를 차지한다. 토홍계도 문과 급제자 42명과 영의정 홍언필·홍섬 부자, 병자호란 삼학사의 한 사람인 홍익한 등을 냈다. 1454년 홍일동이 남양홍씨세보를 편찬해 조선 초기 족보 편찬의 선례를 남겼고, 2015년 인구는 488,610명이다.

독립유공자 10명 확인

홍범도洪範圖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포수 출신 의병장으로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했으며 청산리 전투에도 참전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이어 2021년 대한민국장이 추가 서훈되었고 유해가 봉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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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기洪秉箕

건국훈장 대통령장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천도교 지도자로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 측 대표로 서명해 징역 2년형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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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만식洪萬植

건국훈장 독립장

여주 목사를 지낸 문신으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에 항거해 음독 자결하며 순국했다. 갑신정변 주역 홍영식의 형이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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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10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이름생몰년본적운동계열훈격본관 근거공적조서
홍범도洪範圖1868–1943평안북도 미상만주방면건국훈장 대한민국장(2021)위키백과 ↗공훈록 ↗
홍병기洪秉箕1869–1949서울3.1운동건국훈장 대통령장(1962)위키백과 ↗공훈록 ↗
홍만식洪萬植1842–1905서울계몽운동건국훈장 독립장(1962)역대인명정보공훈록 ↗
홍사구洪思九1878–1896경상북도 영주의병건국훈장 독립장(1963)역대인명정보공훈록 ↗
홍석훈洪錫勳1921–1945평안남도 평양임시정부건국훈장 애국장(1992)위키백과 ↗공훈록 ↗
홍일섭洪日燮1878–1935충청남도 연기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역대인명정보공훈록 ↗
홍종엽洪鍾熀1899–1983경기도 용인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홍범섭洪梵燮1900–1973충청남도 청양3.1운동건국훈장 애족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홍성여洪性如1925–?평안남도 안주국내항일건국훈장 애족장(1990)위키백과 ↗공훈록 ↗
홍순성洪淳成1891–1973충청남도 청양3.1운동대통령표창(2004)위키백과 ↗공훈록 ↗

친일 행적 기록 2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홍사익洪思翊

군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일본 육군사관학교 26기 출신으로 1944년 일본 육군 중장까지 올랐고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을 지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으며, 전후 연합군 전범재판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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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洪蘭坡

문화·음악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정부 1,006명) 등재

본명은 홍영후로 〈봉선화〉·〈고향의 봄〉을 지은 작곡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된 뒤 전향서를 내고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으로 활동하며 친일 가곡을 작곡해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유족이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으나 2010년 소를 취하하면서 명단 등재가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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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주요 인물

고려

홍언박

공민왕 때 문하시중을 지낸 문정공으로 당홍계 문정공파의 파조다.

조선

홍익한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다 심양으로 끌려가 순절한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토홍계 인물이다.

조선

홍대용

지전설을 주장한 북학파 실학자로 《담헌서》와 《의산문답》을 남겼다.

조선말

홍영식

갑신정변을 주도한 개화파로 우정총국 총판을 지냈다.

근현대

홍범도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독립군 사령관이다.

근현대

홍남기

제46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관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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