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방씨
軍威 方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6,454
2015 인구
396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방적方迪
고려에서 태사성을 지낸 인물로, 왜적 토벌의 책임을 맡아 공을 세우고 군위군에 봉해졌다. 군위에 정착하면서 온양 방씨에서 분관하여 군위 방씨를 이루었다. 온양 방씨 시조 방지의 20세손인 방우선의 넷째 아들로 전한다.
군위 방씨는 고려에서 태사성을 지내고 왜적을 토벌한 공으로 군위군에 봉해진 방적을 시조로 하며, 온양 방씨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이다. 온양 방씨는 당나라 한림학사로 669년 신라에 건너와 설총과 함께 구경의 뜻을 밝히며 유학을 진흥시켰다고 전하는 방지(方智)를 시조로 하고,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993년 거란의 침입 때 공훈을 세워 온수군에 봉해진 방운(方雲)을 중시조로 한다. 방지의 20세손 방우선의 넷째 아들인 방적이 군위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군위를 관향으로 삼았다. 본관 군위(軍威)는 오늘날 대구광역시 군위군에 해당하는 지명이다.
가문의 역사
방적의 8세손 방충경의 둘째 아들 방잠이 480여 년 전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내기에 정착하여 성주 입향조가 되었고, 그 후손들이 용암면 죽전리와 사곡리에 터를 잡았다. 선조 때 한성좌윤을 지낸 방계관(1584~1628)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오설리에 입향하여 세거하였다고 전하는데, 성주 용암면 사곡리에 정착하였다는 기록도 함께 전한다. 집성촌은 달성군 구지면 오설리와 경상북도 성주군 일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오설리에는 1947년 방치원과 방문걸, 방문업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영모재(永慕齋)가, 용암면 사곡리에는 1968년 세운 추원재가 남아 있다. 2015년 성주군에 거주하는 군위 방씨는 68명으로 조사되었으며, 같은 해 전체 인구는 6,454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방적
고려에서 태사성을 지내고 왜적 토벌의 공으로 군위군에 봉해진 인물이다. 군위에 정착하면서 온양 방씨에서 분관하여 군위 방씨의 시조가 되었다.
방잠
방적의 8세손 방충경의 둘째 아들로, 480여 년 전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내기에 정착한 성주 입향조이다. 그 후손들이 용암면 죽전리와 사곡리에 세거하였다.
방계관
1584년에 태어나 1628년에 세상을 떠난 인물로 선조 때 한성좌윤을 지냈다고 전한다. 달성군 구지면 오설리에 입향하였다고 전하며, 성주 용암면 사곡리에 정착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참고 자료
같은 방씨의 다른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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