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 인씨
喬桐 印氏
5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1만
2015 인구
249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인서印瑞
중국 진(晉)나라에서 풍익대부를 지낸 인물로, 300년(기림 이사금 3) 신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서라벌에 정착하여 아찬 벼슬을 지냈다고 전한다. 33세손인 고려 인종 때의 인빈(印份)이 한림학사와 문하시사를 지내고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에 봉해짐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교동으로 하였다.
교동 인씨는 중국 진나라에서 풍익대부를 지냈다고 전하는 인서를 시조로 한다. 그가 300년(기림 이사금 3)에 사신으로 신라에 들어와 서라벌에 정착하여 살면서 아찬 벼슬을 지냈다는 것이다. 33세손인 고려 인종 때의 인빈이 한림학사와 문하시사를 지내고 교수부원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교동으로 삼았다. 본관 교동은 오늘날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이다.
가문의 역사
39세손 인공수는 1275년(충렬왕 1) 대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전함과 병량을 마련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진정하고 일본 정벌의 중지를 요청하였으며, 필도치가 되어 기무에 참여하였다. 41세손 인당은 1354년 전라도만호로서 왜구를 격파하였고 그 해 석성부원군에 봉해져 원나라의 요구로 장사성 토벌군에 파견되었으며, 1356년에는 참지정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1명과 무과 급제자 31명을 배출하였다. 집성촌은 충청남도 당진시와 예산군, 황해도 평산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등에 있다. 2015년 인구는 20,737명이다.
독립유공자 5명 확인
서훈자 명단 본관 확인 5명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명단 중 본관이 공개 자료(한국역대인명정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고 생몰년이 일치하는 인물입니다. 본관 기록이 없는 서훈자가 훨씬 많으므로 실제 이 가문의 독립유공자는 이보다 많을 수 있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인빈
시조로부터 33세손으로, 인종 때 한림학사와 문하시사를 지내고 교수부원군에 봉해졌다. 교동 인씨의 중시조로 받들어진다.
인공수
1275년(충렬왕 1) 대장군으로 원나라에 가서 전함과 병량을 마련하는 어려움을 진정하고 일본 정벌의 중지를 요청하였으며, 필도치가 되어 기무에 참여하였다.
인당
1354년 전라도만호로서 왜구를 격파하였고, 그 해 석성부원군에 봉해져 원나라의 요구로 장사성 토벌군에 파견되었다. 1356년에는 참지정사가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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