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안씨
廣州 安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4.8만
2015 인구
15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안방걸安邦傑
고려 태조 때 대장군을 지내고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졌다고 전한다. 본래 광주 지방의 향리로서 고을을 안정시키는 데 공적을 세웠고, 토성분정(土姓分定)에 따라 안씨 성을 받았다고 한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어 광주를 관향으로 삼았다.
시조 안방걸이 광주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광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여기서 말하는 광주는 전라도 광주(光州)가 아니라 서울 남부와 경기도 중부 일대를 아우르던 옛 지명 광주(廣州)다. 기원전 18년 백제가 이곳에 도읍을 정한 이래 신라와 고려를 거쳐 이어져 온 유서 깊은 고을로, 2001년 광주군이 광주시로 승격되었다. 후손은 6후 24파로 나뉘는데, 총랑장공파와 중랑장공파, 사간공파, 판사공파, 호군공파, 위위주부공파 등이 그 줄기다.
가문의 역사
과거 합격자는 모두 165명으로, 문과 45명과 무과 11명, 사마시 109명을 배출하였다. 안성(1344~1421)은 조선의 초대 청백리로 뽑혀 강원도 관찰사와 좌참찬을 지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1712~1791)은 성호 이익의 문인으로 우리 역사를 강목체로 정리한 동사강목을 저술했고, 목천현감과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광성군(廣成君)에 봉해졌다. 근현대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제4대 위원장을 지낸 안경환, 제50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안동수 등이 나왔다. 집성촌은 경기·충청·전라·경상 지역은 물론 울산과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 30여 곳에 분포한다. 2015년 인구는 48,033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안성
조선의 초대 청백리로 뽑혔으며 강원도 관찰사와 좌참찬을 지낸 문신이다.
안정복
호는 순암이며 성호 이익의 문인으로 우리 역사를 강목체로 정리한 동사강목을 저술한 실학자로, 목천현감과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광성군에 봉해졌다.
안경환
국가인권위원회 제4대 위원장을 지낸 법학자다.
안동수
제50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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