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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1923.4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곡산 연씨

谷山 延氏

2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3.4만

2015 인구

192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연계령延繼笭

곡산 연씨가 시조로 받드는 인물이다. 그 7세손 연수창(延壽菖)이 제국대장공주를 배종하여 고려에 들어와 은자광록대부 좌복야를 지내고 곡산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실제 문헌으로 뚜렷이 확인되는 중시조는 조선 개국공신 연사종(延嗣宗)이다.

곡산 연씨는 연계령을 시조로 삼으며, 그 후손 연수창이 고려에 들어와 곡산에 자리 잡은 데서 관향이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실질적인 중시조는 함흥에서 난 연사종으로,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상장군과 호조 전서를 거쳐 곡성군에 봉해졌고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어 곡산부원군이 되었으며 판한성부사와 삼군 도진무, 중군 도총제를 역임하였다. 본관 곡산은 지금의 황해북도 곡산군으로, 본래 고구려의 십곡성이었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진서로 고쳐졌다. 고려 초에 곡주로 개칭되었고 1393년에 곡산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부로 승격하였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무과 급제자 22명과 문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 14세손 연정설은 1431년에 태어나 1511년에 죽었는데 상주목사와 안동부사를 지낸 뒤 사화를 겪고 관직을 버려 청주 현도면에 안한정을 짓고 학문에 힘써 청주 입향조가 되었다. 18세손 연준걸은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고, 22세손 연최적은 1682년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인현왕후 복위를 주장한 공으로 뒤에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근현대에는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연병호를 비롯해 여러 독립운동가가 이 가문에서 나왔다. 집성촌은 서울 노원구 하계동과 관악구 신림동, 경기도 광주시와 포천시, 충청북도 증평군·음성군·청주시·진천군, 평안남도 평양 일대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33,891명이다.

독립유공자 2명 확인

연병호延秉昊

건국훈장 독립장

1894년에 태어나 1963년에 죽었다. 청년외교단을 조직하고 대한애국부인회와 협력해 군자금을 모았으며 시사책진회를 만들었고, 한국혁명당과 한국독립당의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연기우延基羽

건국훈장 대통령장

1907년 8월 군대가 해산되자 제물포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성·삭령·철원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같은 해 이인영의 13도 연합 의진에 참가해 동대문 부근까지 진격하였고, 이후 허위의 의진과 강기동·이진룡 등과 함께 유격전을 이어갔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확인 ↗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연사종

함흥에서 났으며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상장군과 호조 전서를 거쳐 곡성군에 봉해졌고, 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어 곡산부원군이 되었으며 판한성부사와 중군 도총제를 지냈다.

조선

연정설

1431년에 태어나 1511년에 죽었다. 상주목사와 안동부사를 지냈고 사화 뒤 관직을 버려 청주 현도면에 안한정을 짓고 학문에 전념한 청주 입향조이다.

조선

연준걸

시조의 18세손으로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조선

연최적

시조의 22세손으로 1682년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감찰을 지냈고 인현왕후 복위를 주장한 공으로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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