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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인구 2931.6만명 · 2015 인구주택총조사

강진 안씨

康津 安氏

0

확인 독립유공자

0

수록 친일 기록

1.6만

2015 인구

293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안우安祐

고려 공민왕 때의 무장으로 1352년 군부판서로서 조일신의 난을 평정하였다. 홍건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워 도원수에 임명되었고 중서평장정사에 올라 추충절의정란공신에 책록되었다. 1362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강진을 관향으로 삼았다.

강진 안씨는 고려 말의 무장 안우를 시조로 받든다. 본관 강진의 옛 이름은 탐진(耽津)으로, 본래 백제의 동음현이었다가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름을 고쳐 양무군에 속하였다. 1417년 도강현과 합치면서 강진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군에 해당한다. 그런 까닭에 이 가문은 강진 안씨와 탐진 안씨(耽津 安氏)라는 두 이름으로 함께 불리며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도 두 이름이 따로 집계된다. 일부 계보에서는 안원린(安元璘)을 시조로 적기도 하나 사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가문의 역사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6명과 무과 급제자 5명, 생원·진사시 합격자 10명을 배출하였다. 조선 초 안지는 세종 때 용비어천가를 짓는 데 참여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안의가 선조의 어용과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냈고 안기종이 전장에 나섰다.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에는 안효제가 항일운동에 나섰고, 광복 후에는 안호상이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다. 집성촌은 전라북도 정읍시 입암면과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등지에 형성되었다. 2015년 인구는 15,585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조선

안지

1384년에 태어나 1464년에 세상을 떠난 문신으로 세종 때 용비어천가 편찬에 참여하였다.

조선

안의

1529년에 태어나 1596년에 세상을 떠난 인물로 임진왜란 때 선조의 어용과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냈다.

조선

안기종

1556년에 태어나 1633년에 세상을 떠난 인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근현대

안호상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철학자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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