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문씨
江城 文氏
0명
확인 독립유공자
0명
수록 친일 기록
2,906
2015 인구
511위
본관 인구 순위
시조와 유래
始祖 · 시조
문익점文益漸
1329년 무렵 경상도 강성현에서 태어나 1398년에 세상을 떠났다. 고려 말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들여와 장인 정천익과 함께 재배하였다. 사후 조선 태종 때 참지의정부사 강성군에 증직되고, 1440년 영의정부사 부민후에 가증되었다.
강성 문씨는 남평 문씨와 뿌리를 같이하는 동종 분파 가문으로, 고려 말에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을 시조로 한다. 본관 강성(江城)은 문익점의 출신지인 강성현에서 온 지명으로, 지금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일대에 해당한다.
가문의 역사
문익점은 사후 조선 태종 때 강성군에 증직되고 세종 때인 1440년 영의정부사 부민후에 가증되는 등 거듭 현창되었다. 2015년 인구는 2,906명이다.
독립유공자 0명 확인
이 가문에서 아직 확인된 독립유공자 정보가 없어요. 수록 기준은 국가보훈부 서훈자 중 본관이 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인물입니다. 서훈자 명단에 있어도 본관 기록이 공개 자료에 없으면 목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친일 행적 기록 0명 수록
아래 기록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정부, 1,006명)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 공개 자료 기준입니다. 같은 본관이라는 사실은 직계 혈연관계를 의미하지 않으며,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헌법 제13조 제3항 연좌제 금지).
공개 자료에서 본관이 확인된 친일 행적 기록이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주요 인물
문익점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와 정천익과 함께 재배에 성공한 문신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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